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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 부작위 위헌확인

[전원재판부 2014헌마888, 2021. 8. 31.]

【판시사항】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대일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하였는지 여부에 관한 한ㆍ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의하여 해결할 피청구인의 작위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영진, 재판관 문형배의 각하의견
국제전범재판에 관한 국제법적 원칙, 우리 헌법 전문, 제5조 제1항, 제6조의 문언 등을 종합하면, 국내의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국제전범재판소의 국제법적 지위와 판결의 효력을 존중하여야 한다. 따라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입은 피해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입은 피해의 경우에는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한ㆍ일 양국 간의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고 보더라도, 피청구인이 그동안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해결 및 보상 등을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온 이상, 피청구인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자신의 작위의무를 불이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재판관 이종석의 각하의견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의 규정이나 헌법 전문으로부터 우리 정부가 청구인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협정으로부터도 청구인들을 위하여 협정상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도출되지 않는다. 나아가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내용에 따라 어떠한 의무성이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이는 일반적ㆍ추상적 의무를 의미할 뿐, 피청구인이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이미선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 청구에 관한 반대의견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 질 수 있다. 청구인들이 피청구인의 작위의무의 이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게 된 역사적 배경 등을 종합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경우 일본에 의한 배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여서는 아니 된다.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이행을 통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법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고,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는 국제전범재판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피청구인이 작위의무를 이행한다고 하여 국제전범재판의 판결에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이상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지 아니한 부작위는 청구인들의 중대한 헌법상 기본권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

【참조조문】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제2조, 제3조

【참조판례】

헌재 2019. 12. 27. 2012헌마939, 판례집 31-2하, 193
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판례집 23-2상, 366

【전문】

[당 사 자]


청 구 인[별지 1] 청구인 명단과 같음

청구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해마루담당변호사 장완익 외 1인

피청구인외교부장관

[주 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한다.

[이 유]


1. 사건개요

가.청구인들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에 의하여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되어 동남아시아 각국에 위치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다가 종전 후 연합국인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에서 이루어진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비씨(BC)급 전범으로 처벌받은 사람(이하 ‘한국인 BC급 전범’이라 한다) 내지 그 유족들이다.

피청구인은 외교, 외국과의 통상교섭 및 그에 관한 총괄ㆍ조정, 국제관계 업무에 관한 조정, 조약 기타 국제협정, 재외국민의 보호ㆍ지원, 재외동포정책의 수립, 국제정세의 조사ㆍ분석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행정부 소속의 국가기관이다.


나.대한민국(이하 ‘한국’이라 한다)은 1965. 6. 22. 일본국(이하 ‘일본’이라 한다)과의 사이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을 체결하였다.


다. 청구인들은, 자신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이 위 협정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이미 소멸되었다고 보는 일본 정부와 소멸되지 않았다고 보는 한국 정부 간에는 위 청구권에 관한 해석상 분쟁이 존재하므로, 피청구인은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14. 10. 14.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재산권 등과 같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라.청구인 이○○는 2021. 3. 28. 사망하여 그 상속인인 강○○이 이 사건 심판청구절차를 수계하였고, 청구인 강○○은 2019. 3. 17. 사망하여 그 상속인인 강△△가 이 사건 심판청구절차를 수계하였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ㆍ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이와 관련된 위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련규정]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길 희망하고,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하길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조

1.일본국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a)현재에 있어서 1,080억 일본 엔(108,000,000,000엔)으로 환산되는 3억 미합중국 달러($300,000,000)와 동등한 일본 엔의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본 협정의 효력발생일로부터 10년의 기간에 걸쳐 무상으로 공여한다. 매년 이루어지는 생산물 및 용역의 공여는 현재에 있어서 108억 일본 엔(10,800,000,000엔)으로 환산되는 3천만 미합중국 달러($30,000,000)와 동등한 일본 엔의 액수를 한도로 하고, 한 해의 공여가 본 액수에 미달되었을 때에 그 잔액은 그해 이후의 공여액에 가산된다. 단, 매년 공여 한도액은 양 체약국 정부의 합의에 의하여 증액될 수 있다.

(b)현재 720억 일본 엔(72,000,000,000엔)으로 환산되는 2억 미합중국 달러($200,000,000)와 동등한 일본 엔의 액수에 달하기까지 장기 저리 차관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요청하고, 또한 제3항의 규정에 근거하여 체결될 약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사업의 실시에 필요한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대한민국이 조달하는 데 있어 충당될 차관을 본 협정의 효력발생일로부터 10년의 기간에 걸쳐 행한다. 본 차관은 일본국의 해외경제협력기금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하고, 일본국 정부는 동 기금이 본 차관을 매년 균등하게 이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전기 제공 및 차관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유익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2. 양 체약국 정부는 본 조의 규정의 실시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권고를 행할 권한을 가지는 양 정부 간의 협의기관으로서 양 정부의 대표자로 구성될 합동위원회를 설치한다.

3.양 체약국 정부는 본 조의 규정의 실시를 위하여 필요한 약정을 체결한다.

제2조

1.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2.본 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은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a)일방 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 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서 취득되었거나 또는 타방 체약국의 관할 하에 들어오게 된 것

3.제2항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 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 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제3조

1.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부터 30일의 기간 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 30일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단, 제3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 중 어느 편의 국민이어서는 안 된다.

3.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당해 기간 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아니하였을 때, 또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제3국에 대하여 당해 기간 내에 합의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양 체약국 정부가 각각 30일의 기간 내에 선정하는 국가의 정부가 지명하는 각 1인의 중재위원과 이들 정부가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중재위원회를 구성한다.

4.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에 의거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복종한다.

제4조

본 협정은 비준되어야 한다. 비준서는 가능한 한 조속히 서울에서 교환한다. 본 협정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3. 청구인들의 주장

가.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 5.경 일본 육군성은 한국인을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하였다. 한국인 포로감시원은 일본군에 의하여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역할로 이용당하다가 일제의 패배로 종전이 된 후 1945. 10.부터 1951. 4.까지 연합국에 의한 전범재판을 통해 억울하게 BC급 전범으로 처벌받았다.


나.일본 정부는 이 사건 협정 체결 이후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모든 배상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 정부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피해와 관련하여 일본의 책임이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한ㆍ일 양국 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


다.이 사건 협정 제3조는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ㆍ일 양국 간의 분쟁이 있을 경우 외교상 경로나 중재절차에 의한 해결방법을 규정함으로써 체약국에게 위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해결의무를 부담시키고 있으므로, 한국 정부에게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의 해결을 위한 작위의무가 있다.


라.한국 정부로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를 선언하고 있는 헌법 제10조 등에 입각한 작위의무가 있음에도,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외교적 보호조치나 분쟁해결수단의 선택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있는바, 이러한 행정 권력의 부작위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4. 이 사건의 배경

이 사건을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이 사건의 배경 및 전체적 경위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가.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후의 보상처리과정

(1)해방 후 한국에 진주한 미군정 당국은 1945. 12. 6. 공포한 군정법령 제33호로써 재한 구 일본재산(在韓 舊 日本財産)을 그 국유ㆍ사유를 막론하고 미군정청에 귀속시켰고, 이러한 구 일본재산은 한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 9. 20.에 발효한 ‘한미 간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으로 한국 정부에 이양되었다.


(2)한편, 1951. 9. 8.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과의 평화조약에서는 한국에게 일본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고, 다만, 위 조약 제4조 a항에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주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ㆍ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는 것을, 제4조 b항에 일본은 전기 지역에서 미군정 당국이 일본 및 일본인의 재산을 처분한 것을 유효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각 규정하였다.


(3)위 조약 제4조 a항의 취지에 따라 한국 및 한국 국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ㆍ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1951. 10. 21. 예비회담 이후 1952. 2. 15. 제1차 한ㆍ일 회담 본회의가 열려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7차례의 본회의와 이에 따른 수십 차례의 예비회담, 정치회담 및 각 분과위원회별 회의 등을 거쳐, 1965. 6. 22. 이 사건 협정과 어업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의 부속협정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4)제1차 한ㆍ일회담(1952. 2. 15.∼4. 25.) 시 한국 정부는 ‘한ㆍ일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8개항’(이하 ‘8개 항목’이라 한다)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1. 한국에서 반출된 고서적, 미술품, 골동품, 그 외 국보, 지도원판 및 지금, 지은을 반환할 것, 2. 1945. 8. 9. 현재, 일본 정부의 대 조선총독부 채무를 변제할 것, 3. 1945. 8. 9. 이후, 한국에서 이체 또는 송금된 금액을 반환할 것, 4. 1945. 8. 9. 현재, 한국에 본사 또는 주 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 재산을 반환할 것, 5. 한국 법인 또는 한국 자연인의 일본 및 일본민에 대한 일본채, 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그 외 한국인의 청구권을 변제할 것, 6. 한국 법인 또는 한국 자연인 소유의 일본 법인 주식 또는 그 외 증권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 7. 전기 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발생한 과실을 반환할 것, 8. 전기 반환 및 결제는 협정 성립 후 즉시 개시하고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종료할 것의 8개 항목이다.


(5)그러나 제1차 한ㆍ일회담은 위 8개 항목의 청구권 주장에 대응한 일본 측의 대한일본인 재산청구권 주장으로 결렬되었고, 이후 독도 문제 및 평화선 문제에 대한 이견, "일본에 의한 36년간의 한국통치는 한국에 유익한 것이었다."는 일본 측 수석대표 구보타(久保田) 망언 및 양국의 정치적 상황 등으로 제4차 한ㆍ일회담까지는 청구권 문제에 관한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6)그 뒤 8개 항목에 대한 실질적 토의가 이루어진 것은 제5차 한ㆍ일회담(1960. 10. 25.∼1961. 5. 15.)이었는데, 8개 항목 각 항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은 대체로, 제1항과 관련하여서는, 지금 및 지은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반출한 것이므로 반환의 법적 근거가 없고, 제2, 3, 4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미군정법령 제33호가 공포된 1945. 12. 6. 이후의 것에 한하며, 제5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 측이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국 측에 철저한 근거의 제시를 요구, 즉, 구체적인 징용, 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제5차 한ㆍ일회담의 청구권 위원회에서는 1961. 5. 16. 군사정변에 의해 회담이 중단되기까지 8개 항목의 제1항부터 제5항까지 토의가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였을 뿐, 실질적인 의견 접근을 이루는 데는 실패하였다.


(7)이에 1961. 10. 20. 제6차 한ㆍ일회담이 재개된 후에는 청구권에 대한 세부적 논의는 시일만 소요될 뿐 해결이 요원하다는 판단하에 정치적 측면의 접근이 모색되었다. 1961. 11. 22. 박정희ㆍ이케다 회담 이후 1962. 3. 외상회담에서는 한국 측의 지불요구액과 일본 측의 지불용의액을 비공식적으로 제시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 한국 측의 순변제(純辨濟) 7억 불에 대하여 일본 측의 순변제 7만 4천 불 및 차관 2억 불이라는 차이가 확인되었다.


(8)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측은 당초부터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하면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져야 될 뿐 아니라 38선 이남에 국한되어야 하며 그 금액도 적어져서 한국 측이 수락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 측은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나 문제를 대국적 견지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와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해결할 것을 처음에 주장하였고, 그 후에 다시 양보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 및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하되 그 금액을 각각 구분 표시하지 않고 총액만 표시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


(9)이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일본에서 이케다 일본 수상과 1차, 오히라 일본 외상과 전후 2차에 걸쳐서 회담하고, 오히라 외상과의 1962. 11. 12. 제2차 회담 시 청구권 문제의 금액, 지불세목 및 조건 등에 관하여 양측 정부에 건의할 타결안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하였고, 구체적 조정과정을 거쳐 제7차 한ㆍ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5. 4. 3. 당시 외무부장관 이동원과 일본의 외무부대신 시이나 간에 ‘한ㆍ일 간의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1965. 6. 22. 명목을 구분표시하지 않고 일본이 한국에게 일정 금액을 무상 및 차관으로 지불하되,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되었다.


(10)그 후 한국 정부는 1966. 2. 19. 구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3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무상자금 중 민간보상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이후 1971. 1. 19. 구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4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보상신청을 받았으나, 그 대상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ㆍ징병된 사람 중 ‘사망자’와 위 회담 과정에서 대일 민간청구권자로 논의되어 알려졌던 민사채권 또는 은행예금채권 등을 가지고 있는 ‘민사청구권 보유자’에 한정되었고, 그 뒤 1974. 12. 21. 구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5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합계 91억 8,769만 3천 원을 지급하였다.


(11)한편, 이 사건 협정의 체결과정에서 한국인 BC급 전범의 문제는 1952. 2. 4. 제1차 한ㆍ일회담 제29차 재일한인법적지위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잠깐 언급만 되었다가 흐지부지되어 그 이후 양국 사이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한국인 BC급 전범에 대한 보상도 8개 항목 청구권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으며, 한국 정부가 2005. 1.경 이 사건 청구권 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를 공개하고, 그 후 구성된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라 한다)의 공식의견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나.한국인 BC급 전범에 관한 역사적 배경

(1) 일제의 한반도 강점기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부의 연합군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 수행 과정에서 약 30만 명 내외의 영국ㆍ네덜란드ㆍ호주ㆍ미국 등 연합군 병사들이 일본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 일본 군부는 대규모로 발생한 연합군 포로들을 수용ㆍ관리하기 위하여 1941. 12. 육군성에 ‘포로정보국’을 설치하여 이듬해 5월부터 한반도에서 한국인을 포로감시원으로 강제 모집하였다.


(2) 그 결과 약 3,000여 명의 한국인들이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되었고, 이들은 군무원의 신분임에도 부산에 있는 노구치(野口) 부대에 수용되어 2개월간 사격과 총검술 등의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인도네시아ㆍ필리핀ㆍ미얀마ㆍ태국 등 동남아시아 각국에 산재되어 있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배치되었다. 한국인 포로감시원은 하급 군무원으로 일하면서 상관인 일본군 장교와 부사관의 명령에 따라서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ㆍ통제하였다.


(3)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갈 무렵인 1943. 10. 모스크바에서 연합국 대표들이 모여 전쟁이 끝난 다음 주요 전쟁범죄자들을 처벌하기로 결정하는 ‘독일의 잔학행위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는 등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 전범(戰犯)의 처리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1945. 7. 26. 미국ㆍ영국ㆍ중국 등의 정상이 모여서 발표한 ‘포츠담선언’을 통하여 패전국에 대한 전범 처벌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어서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구 소련 4개국 회의가 런던에서 열려 1945. 8. 8. ‘중대 전쟁범죄인의 소추 및 처벌에 관한 협정’이 공포(公布) 되었는데, 이 협정에 부속된 국제군사재판소 헌장이 실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독일의 전범 소추와 처벌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한편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일본 전범 용의자에 대한 기소와 재판소 설치에 관한 지시를 하달하였고, 이 지시에 따라 극동연합군최고사령부는 사령부 일반명령으로 극동국제군사재판소 헌장을 공포하였으며, 이 헌장에 따라 1946. 5. 3. 일본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극동국제군사재판정(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이른바 ‘도쿄 전범재판’)이 도쿄에서 개정(開廷)되었다.


(4) 연합국이 제정한 국제군사재판소 헌장 제6조 및 극동국제군사재판소 헌장 제5조는 전쟁 범죄의 형태를 ‘A항 : 평화에 반하는 죄’, ‘B항 : 통상의 전쟁 범죄’, ‘C항 : 인도에 반하는 죄’의 3가지 형태로 구분하였고, 이 중 침략전쟁을 일으킨 국가 지도자 등이 평화에 반하는 죄를 범한 경우 ‘A급 전범’, 그 외 B항과 C항의 죄를 범한 자를 ‘BC급 전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극동국제군사재판소 헌장 제6조에서는 이들 범죄와 관련하여 피고인이 공무상의 지위, 혹은 피고인이 자신의 정부 기관 또는 상사의 명령에 따라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은 면책사유가 될 수 없고 다만 형의 감경사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A급 전범은 독일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및 일본의 도쿄 전범재판을 통하여 처벌받은 반면에, BC급 전범은 연합국인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중국 등 해당 전범 피해자의 국가에서 이루어진 전범재판을 통하여 처벌되었다.


(5) BC급 전범으로 처벌된 한국인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는 일본 후생성 인양원호국(厚生省 引揚援護局)에서 1955. 12. 1. 생산한 ‘한국, 대만출신전쟁재판수형자명부(韓國, 臺灣出身戰爭裁判受刑者名簿)’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종전 이후 연합국에 의한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전범으로 인정되어 처벌받은 한국인은 총 148명이었는데, 그 중 129명의 한국인 포로감시원들 가운데 14명이 사형되었고, 115명이 유기징역형에 처해졌다.


(6)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전범재판을 한 각국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1950년 일본의 ○○ 형무소로 이송되어 남은 형기까지 수감되거나 가석방되었다. ○○ 형무소를 출소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1955. 4. 1. ‘○○회’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로 ‘기본적 인권 및 생활권 확보’ 및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국가보상 등을 받아내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 왔고, 일본 정부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아내기도 하였지만, 이후 보상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완강한 태도로 인하여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하였다. 오히려 1965. 6. 22.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일본 정부의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후쿠시마 미즈호 참의원 의원이 제기한 ‘한국ㆍ조선인 BC급 전범자들에 대한 인도적 조치에 관한 질문 주의서’에 대한 2006. 6. 20.자 답변서를 통해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 및 제3항을 언급하였고,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역시 아리타 요시후 참의원 의원이 제기한 ‘한국인 BC급 전범자 문제에 관한 질문 주의서’에 대한 2014. 2. 4.자 답변서에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을 언급하는 등 한국인 BC급 전범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7) 한편 한국은 2004. 3. 5.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진상규명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다. 위 법률과 그 시행령에 따라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라 한다)가 설치되어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조사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강제동원의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되었다. 이후 이 사건 협정과 관련하여 국가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원하기 위하여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태평양전쟁 희생자지원법’이라 한다)이 2007. 12. 10.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서 청구인들 중 강○○, 박○○, 변○○, 박△△, 정△△는 유족으로서 위로금을 지급받았다. 한편 2010. 3. 22. 진상규명법과 태평양전쟁 희생자지원법을 폐지하는 대신 두 법을 합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8) 현재까지 한국 정부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피해 보상 문제는 이 사건 협정과는 관련이 없고, 일본이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해결하여야 하는 문제라는 입장이고, [별지 2] 기재와 같이 2010년경부터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일본에서 주도적으로 한국인 BC급 전범들 보상에 관한 입법 등을 하여 해결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왔다.


5. 판단

가.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영진, 재판관 문형배의 각하의견

(1) 행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

(가)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위에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가 의미하는 바는 첫째, 헌법상 명문으로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 둘째, 헌법의 해석상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도출되는 경우 셋째,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나) 헌법 전문, 제2조 제2항, 제10조와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일제강점기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배상과 관련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하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참조). 그러나 만약 공권력의 주체에게 위와 같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서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갈 작위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게 된다.


(다) 이 사건에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피해는 크게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입은 피해 부분(이하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라 한다)과 그 밖의 일제의 강제동원에서 일제에 의한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 인하여 입은 피해 부분(이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라 한다)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하에서는 각 피해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살핀다.


(2)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 부분

(가) 구체적 판단

1)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에 강제동원되어 동남아 지역에 산재해 있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배치되어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서 연합군 포로를 감시ㆍ감독하는 포로감시원으로 일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될 무렵에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구 소련의 주도로 설립된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되어 포로감시원으로서 연합군 포로들을 폭행하거나 학대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BC급 전범으로 인정되어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을 통하여 받은 처벌로 인한 피해 보상과 관련하여 이 사건 협정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제전범재판이 패전국의 불법행위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승자의 정의’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였지만, 독일의 나치 전범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과 일제(日帝) 전범을 처벌한 도쿄 재판 등을 통하여 개인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계획ㆍ주도하거나 참여한 ‘침략에 대한 범죄’, 전쟁 기간 중 민간인을 상대로 살인ㆍ집단학살ㆍ학대ㆍ노예화 등과 같은 반인도적 행위를 한 ‘반인도적 범죄’, 또는 포로의 살해나 학대 등과 같은 전쟁에 관한 법률이나 관습을 위반한 ‘전쟁범죄’를 범하였을 경우 국제전범재판을 통하여 처벌하여야 한다는 국제법적 원칙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국제전범재판에 관한 국제법적 원칙은 1946년 국제연합(United Nations, 이하 ‘유엔’이라 한다) 총회에서 ‘뉘른베르크 헌장에 의하여 승인된 국제법의 원칙들과 동 재판소의 판결을 확인하기 위한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함으로써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되었다. 이를 계기로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이 채택되었으며, 유엔이 1998. 6. 15. 개최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관한 유엔 전권외교회의(United Nations Diplomatic Conference of Plenipotentiaries on the Establishment of an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서 채택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근거하여 집단살해범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설치되었다.

이와 같은 국제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국가라고 하여도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 전범에 관한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의 권위와 효력을 존중하는 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규범적 질서라고 할 것이다.


3) 우리 헌법 전문은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명시하여 국제평화주의를 천명하고 있고, 제5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여 ‘침략 전쟁의 금지’라는 국제법상의 원칙을 헌법에 수용하고 있으며, 제6조 제1항에서 "헌법에 의하여 체결ㆍ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같은 조 제2항에서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각 규정하여 국제법질서의 존중을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국제사회에서 개인이 행한 침략에 대한 범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등에 대하여 국제전범재판을 통하여 처벌하는 것은 확립된 국제관습법으로서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해당하여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유엔이 채택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대하여 1950. 9. 4. 국회 동의를 거쳐 1951. 1. 12. 조약 제1382호로 발효하였고,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 대하여도 2002. 11. 8. 국회동의를 거쳐 2003. 2. 1. 조약 제1619호로 발효하였다. 아울러 2007. 12. 21. 법률 제8719호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인 집단살해죄(제8조), 인도에 반한 죄(제9조), 사람에 대한 전쟁범죄(제10조), 재산 및 권리에 대한 전쟁범죄(제11조), 인도적 활동이나 식별표장 등에 관한 전쟁범죄(제12조), 금지된 방법에 의한 전쟁범죄(제13조) 및 금지된 무기를 사용한 전쟁범죄(제14조) 등을 국제형사재판소와 협력하여 국내에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하였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저지른 침략범죄, 반인도적 범죄 및 전쟁범죄 등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재판을 통하여 처벌하여야 한다는 국제관습법에 관한 조약을 국회의 동의를 거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별도의 법 제정을 통하여 이를 국내법체계로 편입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국내의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국제전범재판소의 국제법적 지위와 판결의 효력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4) 헌법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및 원폭피해자가 일본 정부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청구권의 소멸 여부에 관하여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의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함에도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서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하였고(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헌재 2011. 8. 30. 2008헌마648 각 참조), 대법원 역시 강제동원 피해자가 가지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으로 인하여 소멸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및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이 사건 협정에 관한 논의의 대상은 일제강점기의 일제의 행위라고 할 것이다.


5)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살던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압제(壓制)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제대로 된 설명이나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되어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서 연합군 포로를 감시ㆍ감독하다가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제대로 된 통역 및 변호인 등을 제공받지 못한 채 처벌을 받은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나 원폭피해자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인 BC급 전범들에게는 국제전범재판소의 재판을 통하여 BC급 전범으로 인정되어 처벌을 받은 특별한 피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며 피청구인을 비롯한 국내의 국가기관이 존중하여야 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따라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처벌로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나 원폭피해자 등이 가지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청구권의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다루기는 어렵다.


6) 위와 같은 사정을 이 사건 협정 체결의 경위 및 내용에 비추어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유효하게 승인되는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처벌을 받아서 생긴 한국인 BC급 전범 피해 보상 문제는 처음부터 이 사건 협정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나) 소결

청구인들의 피상속인들을 비롯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처벌로 인하여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는 이 사건 협정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3) 그 밖의 일제의 강제동원에서 입은 피해 부분

(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일제강점기 일제는 태평양 전쟁에 이용하기 위하여 한반도에서 조선총독부 및 친일파 인사 등에 의한 협박ㆍ회유ㆍ기망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을 강제로 모집하였다. 일제는 부산에 있는 노구치 부대에 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을 모아 놓고 잦은 폭행 등 반인도적인 방식으로 혹독한 군사교육을 시킨 후, 동남아 각국에 설치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이들을 배치하여 일본인 상관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에 따라서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ㆍ감독하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처럼 당시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처하였던 불행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인 BC급 전범들에게는 국제전범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인정되어 받은 처벌로 인한 피해 외에도, 그 밖의 일제에 의하여 강제동원되고 포로감시가 강제되면서 행하여진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하여 입은 피해도 충분히 존재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및 원폭피해자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들에 비추어 보면,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와는 달리,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문제는 이 사건 협정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에게 발생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의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살펴보기로 한다.


(나) 분쟁의 미성숙으로 인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불인정

1)이 사건 협정 제3조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정부는 이에 따라 1차적으로는 외교상 경로를 통하여, 2차적으로는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문제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갈 작위의무가 부여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성숙하여 현실적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이러한 분쟁의 현실적 존재 여부는 피해당사자의 의사,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과정과 그 이후의 상황, 그리고 일본의 책임에 대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입장 및 태도와 같은 역사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2)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첫째, 청구인들은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소송 및 투쟁에서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전범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인정되어 받은 처벌로 인한 피해문제에 집중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한국인 BC급 전범에 관한 논의도 이들이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전범으로 인정되어 처벌받은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BC급 전범들로 구성된「○○회」단체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이 국제전범재판소에서 BC급 전범으로 인정되어 처벌받은 피해에 대하여 보상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고, 일본 정부는 이러한 ○○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여 1950년 중반부터 1960년 사이 국제전범재판소 판결로 처벌을 받은 한국인 BC급 전범에게 보상차원에서 귀환수당, 위로금 및 생활자금 등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일본정부의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는 의회 답변을 통해 한국인 BC급 전범이 입은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셋째, 한국 정부는 원칙적으로 국제전범재판에 의한 처벌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는 이 사건 협정과는 무관하게 일본이 주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는 태도를 취하면서, 2010년경부터 일본 측에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입법 등을 통한 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하여 왔다.


3)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한국인 BC급 전범 당사자는 물론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 한국인 BC급 전범이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처벌을 받아서 입은 피해를 중심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와 관련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의견 대립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된다(다만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 보상 문제는 처음부터 이 사건 협정의 대상이 되지 않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그 외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책임까지 한국과 일본이 상호 인식하고 있었고, 이러한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 간의 분쟁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국제전범재판에 의해 BC급 전범이 됨으로써 처형 등으로 입은 손해의 보상 문제를 집중적으로 요구했던 청구인들의 의사에 주목하고,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입장과 태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4) 그렇다면, 적어도 청구인들의 피상속인들을 비롯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 해석 및 실시상의 분쟁이 성숙하여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따라서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 공권력의 불행사 여부

1) 만약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와 관련하여 그동안 피해당사자인 한국인 BC급 전범들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국제전범재판소의 처벌로 야기된 피해와 함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문제까지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이 사건 협정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본다면, 일본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의 청구권을 실현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상의 요청에 따라서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하는 작위의무가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헌재 2019. 12. 27. 2012헌마939 참조).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취하더라도 피청구인이 한국인 BC급 전범을 위하여 [별지 2]에 기재된 외교적 조치를 이행하였으므로 그 작위의무를 불이행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헌법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결정에서 이 사건 협정 제3조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에 대하여 설시한 바 있다. 즉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공권력의 불행사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의무의 불이행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판시하여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를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의무’로 한정하고 있다. 다만, 외교관계에서 피청구인의 광범위한 재량을 고려하면, 그러한 작위의무 이행은 이행행위 그 자체만을 가리키는 것이지 이를 통해 청구인들이 원하는 결과까지 보장해 주는 이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피청구인이 청구인들이 원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를 언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국가마다 가치와 법률을 서로 달리한 국제환경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다투는 외교행위의 특성과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 제2항이 모두 외교행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게 상당한 재량이 인정된다(헌재 2019. 12. 27. 2012헌마939 참조).


3)한국은 진상규명법에 따라서 설치된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통하여 청구인들의 피상속인들을 비롯한 한국인 BC급 전범을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하였고, 이 사건 협정과 관련하여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위로금을 지원할 목적으로 ‘태평양전쟁 희생자지원법’을 제정하여(제1조 참조), 일부 청구인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였다. 아울러 피청구인은 [별지 2] 기재와 같이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수차례 일본 의원들을 만나고, 한국과 일본 간의 국장 및 과장급 협의를 진행하면서 한국인 BC급 전범에 대한 보상 입법 등을 통한 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하여 왔다(이하 ‘외교적 조치’라 한다).


4)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한국인 BC급 전범을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하면서 그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던 태도에 맞추어 피청구인이 한국인 BC급 전범을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희생양으로 보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하여 외교적 조치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피청구인의 광범위한 재량을 고려할 때, 넓은 의미에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존재할 수도 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을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서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처벌을 받아서 생긴 피해의 보상 문제가 청구인들의 주된 관심사였고,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손해 중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입은 피해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보다 월등하게 큰 점까지 고려할 때, 비록 피청구인이 청구인들의 기대만큼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에 관한 신속하고 적극적인 외교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상 분쟁해결절차 이행에 관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라) 소결

국제전범재판과는 무관하게 한국인 BC급 전범이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입은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성숙하여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설령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이에 따라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서 분쟁해결에 나아갈 피청구인의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아도, 피청구인이 지속적으로 이행한 [별지 2] 기재 외교적 조치를 고려하면 작위의무를 불이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어느 모로 보나 한국인 전범에 대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와 관련하여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4) 소결론

이 사건 심판청구 중 국제전범재판으로 인한 처벌로 인한 피해 부분은 이 사건 협정과 무관하므로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작위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피청구인은 [별지 2] 기재와 같은 외교적 조치를 통하여 그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므로 각하하는 것이 타당하다.


나.재판관 이종석의 각하의견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심판청구가 모두 부적법하므로 각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1) 행정부작위의 헌법소원 대상성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면 공권력의 행사뿐 아니라 공권력의 불행사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공권력의 불행사로 말미암아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위 헌법소원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 것이므로,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란, 헌법상 명문으로 작위의무를 규정하고 있거나, 헌법의 해석상 작위의무가 도출되거나,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헌재 2004. 10. 28. 2003헌마898; 헌재 2018. 3. 29. 2016헌마795 참조). 또한, 이러한 공권력 주체의 구체적 작위의무는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에 대한’ 의무를 의미한다(헌재 1991. 9. 16. 89헌마163;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등 참조).


(2)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여야 할 헌법상 작위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

(가)우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전문의 규정 자체 또는 그 해석에 의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도출될 수 있는지를 본다.

‘국민의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기본권 보장 및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는 국가의 일반적ㆍ추상적 의무를 규정한 것일 뿐 그 조항 자체로부터 국민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할 국가의 작위의무가 도출되지 않는다. 헌법 전문(前文)이 국가적 과제와 국가적 질서형성에 관한 지도이념ㆍ지도원리를 규정하고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규범화한 것으로서 최고규범성을 가지고 법령해석과 입법의 지침이 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부터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이므로,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前文)의 문구로부터도 국민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할 국가의 작위의무가 도출되지 않는다(헌재 1998. 5. 28. 97헌마282;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등 참조). 따라서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만으로는 청구인들에 대하여 국가가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다(헌재 2019. 12. 27. 2012헌마939 재판관 이종석의 별개의견 참조).


(나)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규정된 분쟁해결절차에 관한 조항이 위에서 말하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본다.

1)먼저,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서의 ‘법령에 규정된 구체적 작위의무’란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특정의 작위의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이 법령에 기재된 경우를 의미한다(헌재 2000. 3. 30. 98헌마206). 이는 국가가 위와 같은 구체적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는 헌법소원에 있어서 기본권 침해 가능성 내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요구되는 전제이다.

기본적으로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이나,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행정법규에 구체적인 권리를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이 있다면 이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령에 문제된 구체적 작위의무가 행정권력의 국민에 대한 기속행위로 규정되어 있거나(헌재 1998. 7. 16. 96헌마246; 헌재 2004. 5. 27. 2003헌마851 참조),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공권력 불행사의 결과 청구인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다는 등(헌재 1995. 7. 21. 94헌마136 참조)의 사유로 기속행위로 해석해야 할 때에 구체적 작위의무를 인정하였고, 반대로 순수한 행정청의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청구인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하지만, 이 사건 협정과 같은 조약 기타 외교문서에서, 체약국이 서로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자는 내용과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체약국 당사자 사이에서 체약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할 것을 전제로 마련된 것이므로, 일정한 의무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체약국 당사자가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조약에 근거하여 자국이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조약상 권리의무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자국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구체적 문구가 해당 조약에 기재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조약에 그러한 내용의 명시적 문구가 없는 이상, 해당 조약이 국민의 권리관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약상 정해진 절차상 조치를 취할 것을 자국 정부에 요구할 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협정은 양국 간 또는 일국 정부와 타국 국민 간, 양국 국민 상호간의 ‘재산, 권리, 이익,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 이 사건 협정이 관련국 국민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상의 분쟁해결 절차에 나아갈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 이상, 개별 국민에게 위 협정상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대하여 요구할 구체적 권리가 인정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 협정 내용을 근거로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고, 이는 이 사건 협정과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을 종합하여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헌재 2019. 12. 27. 2012헌마939 재판관 이종석의 별개의견 참조).


2)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내용 자체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3조의 규정에 따른 외교행위를 할 작위의무’라는 것이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 ‘의무’라고 볼 수도 없다.

①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제1항),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 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느 조항에도, 분쟁이 있으면 ‘반드시’ 외교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외교적 해결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반드시’ 중재절차를 신청해야 한다는 ‘의무적’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라는 문구는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양 체약국 사이의 외교적 약속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는 것 역시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이 접수되면’ 회부되는 것인데, 어느 문구에도 중재를 요청하여야 한다는 ‘의무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해석할 만한 근거는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 제2항 어디에서도 외교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 외교상 해결이 안 되면 중재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해 낼 수는 없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헌재 2019. 12. 27. 2012헌마939 재판관 이종석의 별개의견 참조).


②나아가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외교적 해결’, ‘중재절차회부’에 어떤 의무성이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체적인’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 협정으로부터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할 의무’가 도출된다고 하여도, 이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재외국민 보호의무, 전통문화의 계승ㆍ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신체장애자 등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나 마찬가지로, 국가가 계속하여 추구하여야 할 의무이지만 그 자체로는 일반적ㆍ추상적 의무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국가의 일반적ㆍ추상적 의무는 그 자체가 ‘구체적인’, 즉 ‘어떠한 특정한 내용’의 작위의무가 아니므로, 비록 헌법에 명시적인 문구로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직접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로 탈바꿈되지 않는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헌재 2019. 12. 27. 2012헌마939 재판관 이종석의 별개의견 참조).


(3) 소결론

이상과 같이 피청구인에게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헌법상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청구인들이 다투는 부작위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불행사’라고 할 수 없다. 이를 대상으로 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다.


6. 결론

그 이유 구성은 다르지만 관여 재판관의 과반수인 5인이 이 사건 심판청구가 부적법하여 이를 각하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아래 7.과 같은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이미선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 청구에 관한 반대의견이 있다.


7.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이미선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 청구에 관한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 중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입은 피해 가운데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 부분은 이 사건 협정과는 관련이 없어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갈 작위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견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입은 피해와 관련하여,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대일청구권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상 분쟁이 존재하여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갈 작위의무가 인정되고, 그럼에도 피청구인이 그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의 성격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살던 한국인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압제(壓制)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포로감시원으로서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강제동원되어 동남아 지역에 있던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면서 일본군 상관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에 복종한 채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ㆍ육체적 피해를 입었다.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이러한 일제에 의한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아 진상규명법에 의하여 설치된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하여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일본에 대하여 일제에 의한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청구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고, 이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하여 입은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없다.


나.적법요건에 관한 판단

(1)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가)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헌법 또는 법령에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는 것임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하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정부는 이에 따라 1차적으로는 외교상 경로를 통하여, 2차적으로는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하고 있는데,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본다.


(나)이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 일본 정부의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는 각자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의 인도적 해결을 촉구하는 의원의 질의에 대한 공식 답변에서 대일청구권 문제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을 규정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 및 제3항을 언급함으로써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가지는 모든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고 있는 반면에, 피청구인을 비롯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면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과 관계가 없이 그대로 남아있고 일본이 한국인 BC급 전범에 관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므로, 결국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게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관련한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대하여 한ㆍ일 양국 간에 분쟁이 발생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헌법적 가치이자 국가목표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며, 그리하여 국가는 인간존엄성을 실현해야 할 의무와 과제를 안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의 한계’로서 국가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개인의 방어권일 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과제’로서 국민이 제3자에 의하여 인간존엄성을 위협받을 때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한편,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는바, 비록 우리 헌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을 위한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장기간 비극적인 삶을 영위하였던 한국인 BC급 전범 피해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의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참조).


(라)위와 같은 헌법 규정들 및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게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관련하여 위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2) 공권력의 불행사

(가)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피청구인은 위와 같은 작위의무의 이행으로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소멸된 것인지 여부에 관한 한ㆍ일 양국 간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로서의 조치를 특별히 취한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 피청구인은 이에 대하여 [별지 2] 기재와 같이 지속적으로 일본 정부 및 의회의 담당자들과의 수차례 면담을 통하여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위하여 적절한 수준의 지원과 보상 대책을 마련하여 줄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하였고, 이를 위해서 한국인 BC급 전범들과도 여러 차례 논의를 진행하여 왔는바, 이는 한국 정부에 폭넓게 인정되는 외교적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이므로 공권력의 불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는 이 사건 협정과 관련이 없고, 일본이 주도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면서 이를 토대로 위와 같은 외교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고, 피청구인은 일본과의 접촉에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해결을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공권력의 불행사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 정부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의무의 불이행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위와 같이 이 사건 협정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외교적 조치는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이행에 포함되지 않는다.


(3) 소결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관련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본안에 나아가 피청구인이 위와 같은 작위의무의 이행을 거부 또는 해태하고 있는 것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다. 본안에 관한 판단

(1) 이 사건 협정 관련 해석상 분쟁의 존재

(가)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합의의사록 제2조 (g)항은 위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ㆍ일 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나)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포함한 우리 국민의 일본에 대한 청구권은 모두 포괄적으로 이 사건 협정에 포함되었고 이 사건 협정의 체결 및 그 이행으로 포기되었거나 그 배상이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한국 정부는 2005. 8. 26. ‘민관공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일본 정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고 하였고, 아울러 진상규명법에 따라서 설치된 국가기관인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일제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강제동원된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다)따라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대일청구권에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한ㆍ일 양국 간에 해석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이 위 협정 제3조의 ‘분쟁’에 해당한다는 것은 비교적 분명하다.


(2)분쟁의 해결절차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의 분쟁은 우선 외교적인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위 규정들은 협정 체결 당시 그 해석에 관한 분쟁의 발생을 예상하여 그 해결의 주체를 협정 체결 당사자인 각 국가로 정하면서, 분쟁해결의 원칙 및 절차를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은 위 분쟁이 발생한 이상,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여야 하고, 그러한 해결의 노력이 소진된 경우 이를 중재에 회부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이러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를 검토하기로 한다.


(3)피청구인의 부작위의 기본권 침해 여부

(가)피청구인의 재량

외교행위는 가치와 법률을 공유하는 하나의 국가 내에 존재하는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를 넘어 가치와 법률을 서로 달리하는 국제환경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므로, 정부가 분쟁의 상황과 성질, 국내외 정세, 국제법과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관행 등을 감안하여 정책결정을 함에 있어 폭넓은 재량이 허용되는 영역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헌법상의 기본권은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므로 행정권력 역시 이러한 기본권 보호의무에 따라 기본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행사되어야 하고, 외교행위라는 영역도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특정 국민의 기본권이 관련되는 외교행위에 있어서, 앞서 본 바와 같이 법령에 규정된 구체적 작위의무의 불이행이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기본권 침해행위로서 위헌이라고 선언되어야 한다. 결국 피청구인의 재량은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진정으로 중요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범위 내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참조).


(나) 부작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

1)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입은 피해는, 태평양 전쟁 당시 10대 후반 내지 2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과 일본군에 의해 협박, 기망 등과 같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전쟁포로의 처우에 관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혹독한 정신 세뇌와 반인도적이고 폭력적인 행태의 군사훈련만을 받은 뒤, 동남아 각국에 흩어져 있던 포로수용소에 배치되어, 그 곳에서 상관인 일본 군인의 강압적 명령에 못 이겨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ㆍ통제하였고, 그로 인하여 말도 못하는 고초와 피해를 겪는 등의 역사적 경험과 사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달리 그 예를 발견할 수 없는 특수한 피해이다. 일본최고재판소도 1999. 12. 20. 한국인 BC급 전범들로 구성된 ‘○○회’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이에 관한 입법적 보상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의 실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그 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근원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참조).


2)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

앞서 본 바와 같이 1991년경부터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의 법정에서 진행해 온 소송은 그들의 청구권 실현에 관한 입법적 조치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패소 확정되었다. 이제 일본의 법정을 통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의 사법적 구제, 또는 일본 정부의 자발적 사죄 및 구제조치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본에 의하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내몰렸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70여 년이 흘렀고, 이들이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지도 30년이 다 되어 간다. 이 사건 심판 중 청구인 이○○가 사망함으로써 현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이미 사망한 사정을 고려하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한국인 BC급 전범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참조).


3)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피청구인은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받은 불이익 중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그 피해 구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침해되는 기본권이 중대하고 그 침해의 위험이 급박하다고 하더라도 구제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를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구제가 완벽하게 보장된 경우에만 작위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구제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족하다 할 것이며, 이때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 일본 정부에 대한 청구가 최종적으로 부인되는 결론이 나올 위험성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피청구인으로서는 그들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2006년 유엔 국제법위원회에 의해 채택되고 총회에 제출된 ‘외교적 보호에 관한 조문 초안’의 제19조에서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권리를 가진 국가는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 특히 외교적 보호의 행사가능성을 적절히 고려하여야 하고, 가능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 외교적 보호에의 호소 및 청구될 배상에 관한 피해자들의 견해를 고려해야 함을 권고적 관행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청구인들은 이 사건 심판청구를 통하여 피해자인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위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의 이행을 구하고 있으므로 청구인들의 의사는 명확하다 할 것이고, 앞서 살펴 본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게 된 역사적 배경,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위하여 일본에 대하여 공식적 사실인정과 사죄ㆍ배상을 촉구하고 있는 일련의 국내외적인 움직임, 그리고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공식 인정받은 이상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인 BC급 전범이 아닌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와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경우 일본에 의한 배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여서는 아니된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참조).


4) 진정으로 중요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조치를 취하면서 일본 정부의 금전배상책임을 주장할 경우 일본 측과의 소모적인 법적 논쟁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가능성’ 또는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그것이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가 된다거나 또는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과거의 역사적 사실 인식의 공유를 향한 노력을 통해 일본 정부로 하여금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도록 함으로써 한ㆍ일 양국 및 양 국민의 상호이해와 상호신뢰가 깊어지게 하고, 이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적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한ㆍ일관계의 미래를 다지는 방향인 동시에, 진정으로 중요한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참조).

아울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입은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는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와는 별개로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에서 발생한 일제에 의한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 인하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직접 입은 피해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전범재판과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간다고 하여 그것이 헌법 제6조 제1항에 규정한 국제법 존중 원칙 및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과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4) 소결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게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이 사건 협정의 해석상 분쟁이 존재함에도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지 아니한 부작위는 청구인들의 중대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라.결론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관련하여,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및 전문과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 등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 할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등 기본권의 중대한 침해가능성, 구제의 절박성과 가능성 등을 널리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게 이러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재량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피청구인이 현재까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할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

결국, 피청구인의 이러한 부작위는 헌법에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재판관 유남석 이선애 이석태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별지 1] 청구인 명단

1. ∼ 10. 이○○의 소송수계인 강○○ 외


[별지 2] 한국인 BC급 전범 관련 한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외교적 조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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