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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살인·살인미수·군용물절도·군용물손괴·군무이탈

[고등군사법원 2015. 8. 17. 선고 2015노84 판결]

【전문】

【피 고 인】

【항 소 인】

피고인

【검 찰 관】

대위 김한준

【변 호 인】

법무법인 열린사람들 담당변호사 배순도외 3인

【원심판결】

제1야전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2015. 2. 3. 선고 2014고10 판결(관할관, 2015. 2. 13. 원판결대로 확인)

【변 론】

거침

【주 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1. 항소이유의 요지
이 사건 범행은 소초원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원인이었고, ○○-△초소의 순찰일지에 그려진 자신을 비하하는 그림을 보고 결국은 참지 못하고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이는 감형요소로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 대한 형을 사형으로 정한 원심의 양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이 법원의 판단
 
가.  사형의 선고가 허용되기 위한 요건
사형은 인간의 생명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형의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하고, 따라서 사형을 선고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 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 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음을 명확하게 밝힌 후 비로소 사형의 선택 여부를 결정하여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하여는 법원으로서는 마땅히 기록에 나타난 양형조건들을 평면적으로만 참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피고인의 주관적인 양형요소인 성행과 환경, 지능, 재범의 위험성, 개선교화 가능성 등을 심사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여 이를 통하여 사형선택 여부를 심사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고, 피고인이 범행을 결의하고 준비하며 실행할 당시를 전후한 피고인의 정신상태나 심리상태의 변화 등에 대하여서도 정신의학이나 심리학등 관련 분야의 전문적인 의견을 들어 보는 등 깊이 있는 심리를 하여 본다음에 그 결과를 종합하여 양형에 나아가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3. 6. 13. 선고 2003도924 판결, 대법원 2002. 2. 8. 선고 2001도6425 판결, 대법원 1999. 6. 11. 선고 99도763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에 나타난 양형 조건
원심 및 당심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과 피고인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이 인정된다.
1) 피고인의 성장과정, 학교생활 및 교우관계
피고인은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양친 및 형과 함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비교적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입학 후 부모님의 장사로 인해 수원에서 용인, 다시 수원으로 초등학교를 전학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기 전까지 수원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학업성적은 평범했고 부모님도 이를 문제 삼은적은 없었다.
피고인은 어려서부터 발음이 부정확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이로 인해 스스로 주눅이 들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생활하였으며, 그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에는 2명의 친구와 친하게 지냈으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겨우 1명의 친구를 사귈 정도였다. 피고인은 초등학교에서는 심성은 착하나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이 없으며, 집단활동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사귀기를 싫어하며 자기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중학교에서는 온순하고 타협적인 성격으로 주위 친구들과 의견대립이 없으나 학급 일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고등학교에서는 3학년 때 자퇴하기 전까지 근면 성실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학급 일에 협조적이며, 규칙을 잘 지키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독서를 많이 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학창시절의 따돌림과 괴롭힘에 대해 체념하고 지내다가 중학교 3학년 되는 해에 한창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그로 인해 자살하는 학생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감정이 이입되어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당시 피고인을 주도적으로 괴롭힌 아이에 대해서 상상 속에서 살인을 하는 것으로 억압된 분노를 해소하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동급생의 괴롭힘에 그를 살해하는 상상을 하다 실제로 화를 참지 못하고 수업 중에 집으로 와 주방에 있던 칼을 가지고 학교로 가려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제지당한 적도 있는 등 피고인에 대한 주변의 평가와 달리 피고인은 마음속에 분노와 복수심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몇 번 받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학교에서는 ‘또라이’라며 더욱 놀림을 당하는 계기가 되자 결국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자퇴했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학원도 다니지 않고 혼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였다. 검정고시를 마치고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에 합격하였으나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결국 집에서 학업이 가능한 ◇◇◇◇◇◇대학에 진학한 후 군에 입대하였다.
2) 입대 후 병영생활 및 복무태도
피고인은 2011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2012. ◇◇◇◇◇◇대학교☆☆학과 1학년 1학기를 다니다가 2012. 12. 17. 군에 입대하여 훈련을 마치고 2013. 1. 31. 제▽▽보병사단◎◎연대 3대대 11중대(FEBA)로 전속 후 1소대 1분대 소총수로 보직되어 근무하다가 2013. 12. 16.부터 이 사건 범행당시까지 ○○소초에 배치되어 근무하였다.
피고인은 2013. 11. 1. 상병으로, 2013. 6. 1. 병장으로 각각 진급하였고, 전역예정일은 2014. 9. 16.이었다.
○○소초는 소초장 공소외 22중위, 부소초장 공소외 25 중사, 1분대(분대장 공소외 1 하사와 공소외 9 병장, 피고인, 공소외 7 상병, 공소외 6 상병, 공소외 10 일병, 공소외 3일병, 공소외 11 이병), 2분대(분대장 공소외 8 하사), 3분대(분대장 공소외 12 상병), 지원분대(분대장 공소외 13 하사)로 편제되어 운영되고 있었고, 당시 소초에서의 관행은 입대일 기준으로 3개월 단위로 동기로 지냈기 때문에 입대일은 다르지만 피고인은 공소외 14, 공소외 15, 공소외 16, 공소외 17, 공소외 18, 공소외 19, 공소외 20 등과 동기로 지내고 있었고, 소초 내 병사들 29명 중 피고인의 선임은 공소외 9 병장과 공소외 21 병장 2명밖에 없었다.
피고인의 평소 복무태도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소초원들은 피고인이 조용하고 주로 사이버지식정보방을 이용하며 혼자 지냈고, 작업이나 행사에 열외하려고 하며, 평소 사이버지식정보방을 늦게까지 이용하느라 늦잠자기 일쑤였다고 평가하였다.
소초장 중위 공소외 22는 ‘우울증세로 B급 관리하였으나 외진이나 상담관 상담 및 소초장 개인면담을 하지 않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몸집이 왜소하며 말투가 약간 어눌하여 동기생들로부터 약간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청소나 운동시 열외하여 잠을 자거나 TV나 책을 보는 등 혼자 있기를 좋아하였다’고 평가하였으며, 또한 중대(FEBA) 근무 시절인 2013. 8.경부터 2014. 4.경까지 분대장 직책을 수행했던 하사 공소외 23은 피고인이 중대(FEBA)에 있을 때 ‘조용하고 착했었고, 성격이 소심하여 후임자들한테 뭐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화도 못 내 부담감이 심했던 것 같다’고 하였고, ○○소초에 올라와서는 ‘인력부족으로 힘은 들었지만 활기찬 모습을 보여 중대(FEBA)에 있을 때보다 나아 보였는데, 후임들로부터는 잘 못하는 선임으로 인식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하였다.
한편, 피고인은 동기들 중 공소외 15, 공소외 16과는 싸우기도 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다른 동기들과는 외형적으로는 친한 관계로 지냈고, 또한 후임들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피고인이 평소 후임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했고 소심하여 서먹서먹했는데, 특히 분대원 중 상병 공소외 7과 상병 공소외 6은 맏후임들로서 입대 초기인 중대(FEBA) 근무 시절에는 피고인과 사이가 좋았으나 피고인이 부분대장이 된 후 폭행과 욕설을 하며 심한 질책을 하자 배신감을 느껴 그 때부터 피고인을 멀리함으로써 피고인과 갈등관계에 있었으나, 다른 후임들과는 평범한 선·후임 관계를 유지하였고, 특히 공소외 5, 공소외 10, 공소외 3이나 공소외 2와는 비교적 친한 관계로 생활하였다.
3) 범행의 동기
피고인 및 변호인은 범행의 동기와 관련하여 소초원들의 폭행, 별명, 무시 등 괴롭힘과 따돌림이 이 사건의 원인이었고, ○○-△초소의 순찰일지에 그려진 자신을 비하하는 그림을 보고 결국은 참지 못하고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이는 감형요소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피고인이 주장하는 범행 당시 상황 내지 범행 동기에 관하여 살펴보면, 헌병 조사에서는 간부가 주도적으로 병사들과 함께 자신을 폭행했고 인격모독 및 따돌림을 당해 왔는데 사건 당일 순찰일지 그림에 자신을 비하하고 감시·경멸하는 눈초리 등이 그려진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격분하게 되었고, 그동안 군 생활에서 겪어왔던 괴롭힘뿐만 아니라 입대전의 기억(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 왕따 및 괴롭힘, 이로 인해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던 것, 정신과 진료를 받고 친구들이 ‘또라이’라고 놀려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 등)이 떠올랐으며, 비참하고 억울한 감정에 빠져 철책점검 중 다른 사람들의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고 이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온통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내가 이렇게 사회에 나가서 살아봤자 똑같이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살 바에야 다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16:00이후 그림을 보고나서 철책점검이 끝나고 교통통제소로 집결할 때까지 그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범행을 하게 되었다고 진술하였고, 검찰 조사에서는 특정인원이 아닌 불특정인원을 향한 살인이었으며 공소외 25, 공소외 1, 공소외 13, 공소외 15, 공소외 16, 공소외 14, 공소외 17, 공소외 7, 공소외 6 등 9명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인데, 공소외 25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신의 별명을 부르고 괴롭힌 것은 정신적 살인에 해당하고, 공소외 7, 공소외 6은 거기에 동조하여 간접살인을 한 것이고, 그 분위기를 방관한 나머지 소초원들은 살인방관죄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행위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을 주었고 그런 경우 가끔 상상 속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상상(피고인은 이를 ‘상상살인’이라고 함)을 하게 되는데, 사건 당일에도 16:00경 순찰일지 그림을 보고 군 입대 전후의 과거에 괴롭힘을 당한 생각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상상살인을 하였으며, 그게 폭발해서 감정에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진술하였으며, 원심 법정에서는 소초원들의 괴롭힘과 집단 따돌림이 범행 원인이고, ○○-△초소 그림을 보고나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범행에 순차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당심에서도 ‘왜 무고한 사람까지 살해하기로 결심했고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동기가 무엇이냐’는 신문에 대해서 역시 ○○-△초소 그림을 보고 군 입대 전후의 그동안 당했던 괴로운 기억들이 떠올랐고 당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진술하면서 다만 원심 및 당심에서는 상상살인을 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하였다.
한편 피고인은 수사단계 및 원심에 이르기까지 공소외 25 중사가 주도하여 소초원과 함께 자신을 따돌린 행위가 있었다거나 자신이 괴롭힘을 당한 것을 나머지 소초원들도 알고 거기에 호응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소초원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주장하였으나, 당심에 이르러서는 자신은 폭행, 별명 및 따돌림이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 집단적으로 전원이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전체가 왕따나 따돌림이 있었다고 말한 적도 없고 일부분에서만 있었고 또 나머지는 어느 정도 분위기를 아는 사람도 있었고 완전히 몰랐던 사람도 있었다’고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 왜곡된 것 같다고 진술하였고, 또한 헌병 조사 당시 ‘공소외 25가 주도하여 병사들과 함께 자신을 왕따 시켜 자신과 어울리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혼자 독서와 음악듣기를 하면서 소초(GOP)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고 진술한 것 역시 그 때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그렇게 진술한 것이고, 누가 주도해서 피고인을 고의적으로 왕따 시킨 사실은 없다고 진술하였는바, 피고인의 당심에서의 진술 취지는 공소외 25를 비롯한 일부 소초원들로부터 괴롭힘과 인격모독을 당하였고, 초소 그림을 보고 이 사건 범행에 나아간 것이라는 기존의 진술 취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피고인이 과연 군 생활 중 소초원들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았는지, ○○-△초소 순찰일지에 그려진 그림의 내용이 이 사건 범행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요인들이 피고인의 범행 동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이를 정상참작 사유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아래에서 살펴본다.
(1) 폭행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인은 간부인 공소외 25 중사와 공소외 1 하사 일부 병사 그리고 중대(FEBA) 시절 공소외 32가 자신을 폭행하고 인격을 모욕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한다.
가) 피고인은 구체적인 공소외 25의 폭행 및 괴롭힘에 대하여, ① 2014. 3. 초순경부터 막사 등에서 볼 때마다 폭행하고, 돌멩이를 자신의 얼굴에 던져 폭행하였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폭행의 횟수 및 강도(헌병 최초 조사에서는 2014. 3. 초순부터 시간, 특정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볼 때마다 폭행했고 통증을 느낄 정도의 강도였다고 진술하였으나 헌병 8회 조사에서는 10회 미만이었고 찰싹 소리가 나서 기분 나쁠 정도였다고 진술하였고, 돌멩이에 의한 폭행도 당시 누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였다) 등에 있어 진술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폭행의 목격자나 행위 당시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전혀 없는 점, 공소외 25는 뒷목을 툭툭 친 것은 친근감의 표시로 피고인뿐만 아니라 다른 소초원들에게도 한 것으로 강도가 약하여 폭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돌멩이는 던진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점, 공소외 17도 ‘공소외 25가 소초원들의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것은 본 적이 없고, 그냥 가벼운 스킨쉽처럼 등을 툭 치면서 지나가는 경우는 봤는데, 근무 투입 전·후의 격려차원 수준이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주장 외에 이를 입증할 증거 없으므로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② 2014. 4.경 복도에서 ‘슬라임’이라고 여러 번 불러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더니 간부가 부르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뒷목을 폭행하였으며, 2014. 4.경 공소외 13과 대화 중 옆에 앉아 있는 자신을 가리키며 ‘얘는 나중에 전역해서 폐지 줍는 일을 할 거다’, ‘예전에 피고인과 비슷한 놈이 있었는데 탈영하다가 나한테 잡혔다’는 등의 말을 했고, 2014. 4. - 5.경 철책점검 중 피고인의 뒤에서 공소외 25가 따라오면서 ‘말 달려라, 이랴, 힘 써봐라’고 하며 피고인의 총을 잡고 끌고 가게 하였으며, 2014. 5.경 유류고 작업 중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피고인이 기름통을 한쪽으로 기울게 놓게 되자 공소외 25가 ‘얘는 힘이 안 돼서 안 된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라임’이라고 하면서 웃었고, 2014. 5. 10. 소초의 날 행사 때 피고인이 공소외 16과 싸운 후 근무를 바꾸어 달라고 했음에도 들어주지 않고 ‘둘이 총을 쏴서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말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공소외 25는 철책점검 중 순찰로에서 피고인의 총기를 잡고 끌고 가게 함으로써 피고인을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 다만 피고인 외에 다른 인원에게도 장난으로 한 것이고 피고인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하였고, 유류탱크 공사 때 공소외 17이 ‘슬라임’이라고 부른 것 같고 거기에 동조한 것 같다고 진술하여 일부 사실은 인정하였으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주장 외에 달리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 피고인은 공소외 1 하사가 2014. 5. 중순경부터 2014. 6. 20.경까지 뒤통수를 10회 이상 폭행했고, 그 외에도 공소외 13 하사는 중대(FEBA) 시절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욕을 하고 꼬집고 귀를 잡아당겼다고 진술하였으며, 공소외 9는 공소외 21 병장과 함께 종종 침대에 눕혀 놓고 주먹과 무릎으로 옆구리를 10 - 20회 때렸는데 그 횟수가 10 - 15회 정도 되며, 2014. 2.경 공소외 9와 공소외 21이 자신을 눈밭에 쓰러뜨리고 끌고 다니면서 눈을 뿌리고 눈을 먹였으며, 공소외 9가 여러 차례 ‘왜 능력이 부족하냐’고 질책하는 등 폭언하여 모욕감을 주었고, 공소외 17 등도 자신을 폭행하였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① 공소외 1 하사의 경우 뒤통수를 세게 때렸고 폭행 횟수는 엄청 많아 기억할 수 없고 목격자는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사건 당일부터 최근에 발생한 폭행임에도 구체적 진술이 전혀 없는 점, 공소외 13, 공소외 9 및 공소외 17의 경우도 폭행에 대한 주장은 있으나 목격자나 행위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없는 점, ② 공소외 29, 공소외 26, 공소외 27 등은 ‘공소외 1 하사는 병장들에게도 열외 없이 청소를 시키는 등 원칙을 지키고 솔선수범하는 스타일로 잘못하면 따금하게 혼을 내고 이후에는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지냈고, 철책정밀점검 중에 피고인이 휴대용통신장비를 함부로 다뤄 공소외 1 하사가 야단 친 일이 있는데 후임병들을 먼저 보내고 혼을 내 피고인이 창피하지 않도록 배려한 적이 있다’고 진술한 점, ③ 공소외 17은 친근감의 표시로 피고인의 목 부분을 툭툭 치고 피고인도 자신을 툭툭 친 것인데, 이것이 폭행이라고 하면 자신도 피고인으로부터 수십 차례 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진술한 점, ④ 공소외 9도 눈싸움 할 때 장난으로 눈을 막 집어 던진 사실은 있으나 다른 폭행 사실은 없고 자신이 피고인에게 ‘왜 이렇게 무능하냐’고 직설적으로 이야기 한 적은 없고 ‘애들 관리 왜 안 하냐’는 식으로 말을 한 적은 있는데, 그런 말을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면 괴로울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한 점, ⑤ 공소외 34는 ‘일·이병 때 공소외 33, 공소외 13, 공소외 9 등 선임들이 동기인 저와 피고인 등이 잘못 하면 혼내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피고인을 괴롭히거나 한 적은 없다. 오히려 피고인이 이등병일 때는 잘 몰라서 그런 거라 혼내지 않았는데, 일병이 되고도 선임병들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다들 작업해야 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혼이 나곤 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주장 외에 달리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 공소외 32(2013. 9. 26. 전역)의 행위와 관련하여, 피고인은 피고인이 발음이 좋지 않는 것과 군가 등을 외우지 못한 것을 트집 잡고, 선임들의 이름을 외우게 시켰고, 잠을 못 자게하고 노래를 시켰으며, 등이나 팔 같은 데를 깨물어서 피멍이 들게도 했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① 공소외 17은 ‘공소외 32가 피고인의 팔뚝을 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피고인이 웃으면서 하지 말라고 하였고, 또한 친하게 지내려고 자신뿐만 아니라 후임들의 등을 가끔씩 장난으로 물기도 하고 팔을 툭툭 치기도 했는데 불만을 가진 후임들은 들어 보지 못했다. 2013. 6.경 공소외 7, 공소외 32, 공소외 33, 피고인과 함께 성과제 외박간에 속초에서 모텔을 잡고 술을 마시고 논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피고인이 공소외 32를 형이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했었다’고 진술하였고, ② 공소외 14는 ‘혹한기 훈련 때 안면 마스크를 쓰면 코 부분이 나오는데 자신과 공소외 35 및 피고인에게 새 흉내를 내게 했으며 피고인은 처음에는 꺼려하는 것 같았는데 적응을 하여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고 진술하였으며, ③ 공소외 19는 ‘공소외 32가 피고인의 말투를 흉내내며 놀렸다. 그리고 다른 선임들이 놀렸는데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였고, ④ 전 소초장 공소외 28은 ‘공소외 32가 피고인 보다 공소외 34라는 피고인의 동기를 더 혼냈고, 피고인에게는 새 흉내를 내게 하는 것을 3번 정도 목격했으나 그 때 피고인의 표정도 밝았고 혹시 병영부조리인가 싶어 피고인을 불러 공소외 32의 장난이 싫으면 말하라고 했지만 피고인이 괜찮다고 해서 그냥 넘긴 적이 있다’고 진술하였으며, ⑤ 피고인과 가장 친했던 동기인 공소외 35는 ‘공소외 32가 평소 피고인의 상점이나 포상을 챙겨주려고도 하는 등 후임들을 혼내면서도 잘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공소외 32가 괴롭힌 것은 아니고 악의적인 부분은 없었고 그냥 선임과 후임 간에 친해지려고 좋게 말하다가 장난치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중대(FEBA) 시절에 선임들 이름 외우고 계급 외우게 하고, 못 외우면 2-3시간씩 질책을 받는 일이 있었다, 피고인이 놀림 받고 우는 것을 본 적 있는데 공소외 32 병장이 장난을 걸었는데 다른 선임이 엮어서 장난을 하다보니까 피고인이 너무 분했는지 울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공소외 32가 피고인에게 선임들의 이름과 계급의 암기를 강요한 사실, 새 흉내를 내도록 한 사실 및 말투를 흉내 내며 놀린 사실 등은 인정된다.
라) 따라서 공소외 25 중사가 철책점검 중 총기를 끌고 가게 한 행위, 작업 시 피고인의 별명이 불려질 때 이에 동조한 행위 등은 인정되고, 이러한 행위를 한 공소외 25 중사에게는 피고인의 신상을 보다 면밀히 관리해야 할 부소초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공소외 32가 이등병인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행위가 비록 후임병들과 친해지기 위해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피고인뿐만 아니라 다른 후임병들에게 모두 한 행동이었고 피고인만을 대상으로 그러한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심적인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러 자신을 폭행하거나 모욕한 다른 소초원들은 고소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고소하지 않았고, 공소외 25 중사에 대한 고소 내용도 폭행의 정도가 그리 중하지 않고 그 횟수도 많지 않다고 진술한 점, 공소외 32의 행위는 이 사건 범행 발생 훨씬 이전인 중대(FEBA) 시절 피고인이 일·이등병이었을 때 있었던 행위인 점, 피고인은 공소외 25 중사와 여러 차례 상담을 한 바 있고 소초에서 시행되는 주 단위 설문 등을 통해 자신의 고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던 점, 피고인은 설문조사는 실제로 잘 반영되지 않고 부대에서 소문만 나게 되어 그냥 참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나 피고인은 불과 전역 3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피고인이 주장하는 그런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음에도 다른 군내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이 사건 범행으로 나아갔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 대한 공소외 25 중사, 공소외 1 하사의 폭행 또는 모욕, 중대(FEBA) 시절 공소외 32의 위 행위들이 이 사건 범행의 동기가 되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기타 소초원들의 괴롭힘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인은 공소외 7과 공소외 6은 자신을 괴롭힌 것보다는 후임임에도 자신에게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하거나 모른 척 하고 경례를 하지 않는 등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① 공소외 12는 ‘피고인이 선임병이지만 자신의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누리기만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짬티를 부려 경례를 하지 않고 무시해버린 사실이 있고, 공소외 7과 공소외 6도 피고인이 평소 청소도 안 하고 작업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욕을 하거나 피고인이라고 반말을 하기도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② 공소외 6은 ‘피고인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20회 이상 관등성명을 대도록 하고, 자신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하기도 하였으며, 후임들 관물대 정리가 안 되어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관물대에서 옷들을 꺼내 바닥에 던져버린 적도 있다. 피고인은 혼자 행동을 많이 하는데 통상 6명이 근무를 마치면 탄과 총기 반납을 함께 마무리 한 후 식사를 하러 가는데 피고인은 제일 먼저 반납하고 총기현황판도 작성하지 않고 그냥 생활관으로 가서 환복하고 식사하러 가고, 나머지 근무자들이 환복하고 식당으로 가면 피고인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나간다. 피고인을 보고 경례를 안 하고 이름을 부르면 작게 대답하고 자신의 동기들과 있을 때 피고인이라고 불렀다. 2014. 4.말 - 5. 중순경까지 초소근무 설 때 1-2개씩 그림(안경 쓰고 앞머리 숱이 적고, 몸이 말랐고, 라면을 즐겨 먹고, 책을 읽는 모습 등)을 그렸다. 원래 피고인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피고인이 개인행동을 하고 지나친 장난을 칠 때 등 피고인이 짜증나게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피고인과는 소초(GOP) 투입 후 피고인과 함께 수십 차례 근무를 섰지만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으며, ③ 공소외 11은 ‘생활관에서 보더라도 피고인은 혼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동기생인 공소외 17, 공소외 14 병장과는 대화를 하고 가까워 보였는데, 다른 선임병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공소외 17 병장과 공소외 14 병장을 제외한 다른 소초원들은 피고인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식사시간에 피고인이 혼자 식사하고 주변 소초원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정도였지 일부러 따돌리거나 무시하는 것은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④ 공소외 14는 ‘근무조에 따라 밥 먹을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제가 피고인과 같이 근무를 많이 섰는데 피고인이 근무 전에 밥을 안 먹고 자고 있으면 제가 피고인을 깨우면서 밥 먹으려 가자고 했으나 피고인이 더 잘 거라면서 안 먹을 때도 있고, 같이 가서 먹을 때도 있었다. 보통 전반야 근무 끝나면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기도 했다’고 진술하였으며, ⑤ 공소외 17은 ‘피고인이 혼자 먹는 것을 자주 봤는데 왜 혼자 먹냐고 물어 보면 그냥 웃었다’고 진술하였고, ⑥ 피고인과 절친했던 공소외 35는 ‘피고인이 워낙 소심하고 개인적인 것을 좋아해서 후임들과 이야기하고 이런 장난을 자주 못 봤고, 소통하는 것이 부족하여 후임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다’고 진술하였고, 공소외 18은 ‘피고인이 이병, 일병 때는 좀 열심히 했었는데 상병 달고 나서부터 위 선임들이 없어지니까 열외의식도 나타나고 함께 잘 안 하려고 했고, 다른 병사들이 훈련 준비를 할 때 뒤로 빠져서 막대기로 바닥에 낙서를 한 적도 있고, 제설작업에 적극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진술한 점, ⑦ 후임인 공소외 7은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처음 전입 당시에는 다른 선임들이 볼 때 피고인과 정말 사이좋게 지냈고, 당시는 훈련이 많아 선임들에게 혼나는 일이 많았는데 피고인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아 불침번 근무를 하면 라면을 주면서 같이 먹거나, 주말에 불교행사를 같이 다니면서 서로 말도 많이 하고 친해졌으나, 2013. 8.경 소대생활관으로 바뀌면서 피고인과 같은 생활관에서 지내게 되었고 같은 해 10.경 피고인이 부분대장을 달고 나서 사소한 것(모포가 삐뚫어졌다, 옷이 좀 각이 안 잡혔다는 등)을 가지고 나에게 욕을 하고 후임이 잘못한다며 후임 똑바로 안 가르치냐고 소리치며 관물대에 있는 옷을 다 꺼내 바닥에 내팽개쳐 버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배신감에 선임 대우를 하기 싫었다’고 진술한 점, ⑧ 피고인 스스로도 ‘군 입대 전에도 밥을 주로 혼자 먹는 편이었다. 항상 공적인 일 외에는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소초(GOP)에서 다른 인원들은 몰려다니면서 친한 애들, 후임들 데리고 다니고 즐겁게 대화를 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상대적으로 외롭게 느껴져서 나중에는 몇 번 결식한 적도 있었고, 그 인원들과 안 마주치려고 밥을 일찍 먹거나 늦게 먹기도 했다. 소초(GOP)에 올라가서 계급이 어느 정도 되고 나서 2014. 3. - 4.경 상병 4호봉 때부터 밥을 혼자 먹게 되었다. 분대원들끼리 먹는 걸 좋아 하지 않았다. 공소외 7, 공소외 6 상병이 있어서 저도 눈치가 보여 밥 먹을 때도 항상 불편하고 신경써야 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중대(FEBA)에서는 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소초(GOP)에서는 개인 생활이 많이 보장되어서 자유가 많이 보장되었는데 항상 외로웠다. 소외감, 박탈감이다’라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공소외 6은 피고인을 보고 경례를 안 하거나 이름을 부르면 작게 대답하고, 자신의 동기들과 있을 때 피고인이라고 반말로 호칭하기도 하였으며, 초소 근무 설 때마다 피고인을 희화하는 그림을 그린 사실, 공소외 7은 피고인에게 경례를 잘 하지 않았고 피고인으로부터 배신감을 느낀 이후로는 자선의 전달사항 빼고는 말을 잘 걸지 않은 사실 및 피고인 또한 공소외 7과 공소외 6이 같은 분대원이자 맏후임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아니한 채 공소외 7과 공소외 6을 의식하여 혼자 밥을 먹고 생활하게 되어 항상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 사실 등은 인정되나, 소초 내 사실상 최선임인 피고인이 솔선수범과 희생으로 후임병들을 잘 이끌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오랜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등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 오히려 선임임을 내세워 작업이나 근무 등에서 열외하려고 하고, 단체생활보다는 혼자 생활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후임병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후임병들과는 특별한 친소관계가 없이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다만 후임병들 중 맏후임인 공소외 7, 공소외 6은 피고인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당한 이후로는 최선임인 피고인에게 직접적으로 반항하거나 별명을 부르는 등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피고인이 불러도 못 들은 척 하거나 못 본 척 하고 경례를 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피고인에게 소극적으로 대항하여 피고인과 서로 서먹서먹한 정도의 갈등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바, 이를 두고 후임들 전체가 집단적으로 피고인을 따돌렸다거나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피고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3) 별명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인은 소초원들이 별명을 부르며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는 정신적 살인 또는 인격 모욕에 해당하고, 그것이 이 사건 범행의 동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① 피고인은 자신에게 별명을 부른 사람은 소초원들 중 공소외 25(슬라임, 할배, 이무도비누스), 공소외 36(슬라임), 공소외 9(할배, 노인, 라면전사), 공소외 14(슬라임, 이무도비누스), 공소외 17(슬라임), 공소외 15(슬라임, 할배, 노인), 공소외 16(슬라임, 할배, 이무도비누스) 등이고, 공소외 18과 공소외 19도 동기여서 불렀던 것 같은데 횟수가 3-4회로 적었고 장난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며, 노인과 할배는 2014. 2.경, 라면전사는 2014. 4.경 내지 5.경 공소외 9가 각각 붙인 별명이고, 라면 전사는 공소외 9와 공소외 21 외에는 부른 사람이 없고, 슬라임은 2014. 3.경 공소외 17이 붙인 별명이며, 피고인이 공소외 16과 싸운 2014. 5. 10. 이후 다른 사람들도 슬라임이라는 별명을 부르지 않았고, 이무도비누스는 중대(FEBA)에서 공소외 37이 붙인 것인데 2014. 5. 10. 이후 공소외 14가 갑자기 부르기 시작했다고 진술 한 점, ② 이무도비누스라는 별명은 비하하는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깔보고 무시해서 부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욕하는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③ 공소외 25가 슬라임이나 이무도비누스라고 부를 때 처음에는 악의적인 것은 없었고 장난치듯이 다른 애들에게 하는 것처럼 불렀다고 생각하여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나 점점 심해졌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기분이 나쁘게 되었다고 진술한 점, ④ 피고인은 소초원들이 별명을 부를 때 공소외 16과 싸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점, ⑤ 피고인도 공소외 10에게 ‘꼬맹이’, 공소외 19에게는 ‘공소외 19맘’이라고 불렀는데, 공소외 10의 경우는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나, 공소외 19는 자신과 친해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고 진술한 점 및 피고인도 동기인 공소외 14에게 ‘주둥아, 풍신’, 공소외 17에게 ‘쓰레기’ 등으로 별명을 부른 점, ⑥ 별명에 담긴 의미보다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친밀도에 따라서 별명을 불렀을 때 모욕감을 느끼는지 여부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공소외 18이 자신에게 이무도비누스라고 불렀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 ⑦ 피고인의 동기인 공소외 17은 작업할 때 힘쓰는 것을 잘못하면 “근력이 슬라임이냐”라고 말하기도 하였고, 수시로 슬라임이라고 불렀는데, 이에 대해 피고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 환하게 웃었다고 진술하였고, 또한 피고인의 성격에 대해 ‘마음속에 담아 놨던 말은 표출을 전혀 하지 않았고, 자신이 힘드냐고 물어봐도 괜찮다는 말만 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화가 나거나 기쁘거나 자기 감정을 잘 추스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진술하기도 한 점, ⑧ 2014. 6. 1. 1분대에 전입한 공소외 11은 별명을 부르는 소초원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별명을 부른 소초원은 일부 간부와 병사들이었고, 2014. 5. 10. 이후에는 ‘슬라임’이라는 별명을 부르지 않게 되는 등 별명을 부른 인원이나 횟수가 더욱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별명 자체에는 비하하는 의미는 없고 깔보고 무시해서 부르는 경우에 모욕이라고 하더라도 병영이나 일상생활에서 동료들 사이에 흔히 별명을 부르는 행위에 대하여 어느 순간 인격모독 행위로서 정신적 살인행위와 동등하다고 평가하였다는 피고인의 진술 및 그럼에도 그런 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두기만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2014. 5. 10. 이후 사건 당일에 이르러 별명 부르는 행위 등이 마음속에 축적되어 있다가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여 이 사건 범행의 동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4) ○○-△초소 확인점 순찰일지의 그림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초소 확인점 순찰일지에 있는 그림판이 범행 촉발 요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상상살인 또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심리상태에서 범행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면, 피고인은 ‘초소에서 그림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림 하나로 그려져있어 그냥 지웠고, 그 다음부터는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고 자세히 보지 않았으나, 그날 그림과 글(라면 먹는 모습, 탈모나 비쩍 마르고 뱃살이 나온 우스꽝스럽고 해학적인 모습, 운동하거나 패션 잡지를 보는 모습, 이름 군번 종교를 써놓기도 하고 자신을 가리키는 그림을 그리면서 “애 잘 생겼음”이라고 반어법을 쓴 글, 병신을 뜻하는 ㅂㅅ 등)을 보고 나서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알 수 있었고 자신의 그림 주변에 여러 개의 바라보는 표정이나 눈동자를 그려놓는 것도 평소 일상적인 행동을 지켜보고 감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림이나 글의 내용이 피고인을 형상화하는 신체적 특정이나 평소 습관을 나타냄으로써 누구나 피고인인지를 비교적 쉽게 알 수 있고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그림이나 글들은 순찰일지 한 면에 가득 그려진 그림의 일부에 불과하고, 피고인 외에도 다른 병사들을 나타내는 형상들도 다수 그려져 있다는 점, 캐릭터 그림은 사람의 신체적 특징을 일부 희화하거나 과장하여 표현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는 점, 하나의 그림 주위로 여러 명이 쳐다보는 눈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이를 모든 소초원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판단으로 보인다는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자신을 희화한 그림들로 인해 모욕감을 느꼈다거나 다소 기분이 나빴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그와 같은 그림의 내용만으로 살인의 범행을 결심할 만큼 충격을 주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① 피고인이 당심에서 ‘무엇보다 남들이 그리는 것을 몇 번 보았고, 공소외 2가 ‘6. 10. 말 놓는 날’이라고 쓴 것을 직접 보기도 했으며, 그림 외에도 점점 글이 추가되어 인격 비하적이다’라고 진술하여 이전부터 그림이나 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점, ② 당심 법정에서 ‘공소외 14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그림을 평소에 보았고 “이것 누가 그렸냐”라고 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신문에 대해, 피고인은 ‘마음에 쌓아 두기만 했다’고 하면서 그런데 유독 그날 분노가 생긴 이유는 모르겠다고 답변한 점, ③ 공소외 14는 피고인과 초소 근무할 때 자신이 먼저 순찰일지에 호빵맨, 군인 모습, 십자가, 로마병정 창을 그리기 시작했고 피고인도 같이 그렸는데, 얼마 후 피고인과 함께 근무할 때 피고인이 자기를 묘사한 그림(왜소한 체격에 운동을 하는 모습, 라면 그림이 있는 모습)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이거 누가 그렸냐?”라고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진술하였고, 공소외 6은 2014. 4. 하순경부터 5. 중순경까지 피고인의 행동 등으로 짜증나게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초소 근무를 하면서 1-2개씩 그렸는데 전체 그림의 절반 정도는 자신이 그런 것이라고 진술하였으며, 공소외 10은 2014. 5. 초순경 근무 당시에는 현재 그려진 그림의 2/3 정도 밖에 없었는데 전체 면이 그려진 것은 처음 보게 되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2014. 4. 하순 이후 자신을 암시하고 비하하는 내용의 그림이나 글의 존재한 사실 및 그것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피고인은 2014. 4. 22.부터 5. 1.까지 정기휴가를 실시하였음), 또한 피고인의 선임인 공소외 9, 공소외 21 병장은 전역이 3일 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피고인은 사실상 최선임 병장의 지위에 있었음에도, 초소근무자들이 순찰일지에 확인서명을 하면서 쉽게 목격하게 되고 자신을 모욕하는 그림이나 글들이 있다면 직접 그림을 지우거나 그런 행위를 중지하는 등 충분히 조치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일부러 외면하거나 자세히 보지 않았다는 피고인의 진술을 신빙하기 어렵고, 이 사건 당일 그림을 보고나서 화가 나서 격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범행에 이르렀다는 피고인의 주장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5) 소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이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간부가 주도한 집단 따돌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주장하는 내용 중 인정되는 공소외 25 중사의 행위는 작업이나 소초 생활 중 별명을 부르거나 피고인의 뒷목을 툭툭 치는 정도이고 나머지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동기인 병사들과 피고인이 상호 별명을 부른 사실은 인정되나 그러한 행위를 오로지 피고인에 대한 인격 모욕이나 정신적 괴롭힘으로 볼 수 없고, 후임병들 중 공소외 7, 공소외 6과 갈등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되고 후임병들의 태도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피고인이 평소 선임병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후임병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러한 사실만으로 피고인이 후임병들로부터 무시와 따돌림을 당하였다고 볼 수는 없으며, 평소 순찰일지에 그려진 자신을 희화하는 그림의 존재와 그림이 늘어가는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사건 당일 그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소초원들을 모두 살해하기로 결심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고, 가사 그러한 그림을 보고 군 입대 전후의 기억들이 떠올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동료들을 살해하겠다는 범행의 결심을 하였다 하더라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고인의 충격과 분노를 정당화할 만한 정도의 괴롭힘과 따돌림이 인정되지 않는 이 사건에서 이를 정상에 참작할 만한 범행동기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4) 범행실행 과정
(1) 피고인은 군 입대 후 자신이 지켜본 ○○소초는 실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소초 막사에 있는 간부나 병사 등이 신속히 상황파악을 하지 못할 것이고, 설령 상황파악을 하더라도 소초 막사에 있는 총기함에서 총기를 꺼내고 간이탄약고에서 실탄을 꺼내기 위해서는 중대에 보고하여야 하는데 보고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기 때문에 소초 막사에 있는 소초원들은 무장할 수가 없어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피고인은 무장한 소초원들 중 교통통제소에서 멀리 떨어진 ○○-◈초소에 있던 전반야 근무자인 일병 공소외 27, 이병 공소외 31은 계급이 낮기 때문에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며, 교통통제소와 가까운 ○○-□초소에 있던 전반야 근무자인 이병 공소외 11의 경우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실탄을 지급받지 않았고, 공소외 7은 평소 근무 태도에 비추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전반야 초소 근무자들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따라서 교통통제소에 있는 무장한 공소외 1, 공소외 8, 공소외 15, 공소외 38, 공소외 39, 공소외 40, 공소외 5를 제압하기만 한다면 소초원들을 전부 살해하려는 자신의 범행을 실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먼저 교통통제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자신의 상관과 동료 병사들에게 수류탄을 던져 범행을 개시하였는바, 자신의 범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상되는 위험요소를 고려한 효과적인 공격 방법과 공격 대상을 선정하는 치밀함과 결심한 바를 주저함 없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냉철함 그리고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함께 동고동락하던 무방비 상태의 전우들을 향해 살상력과 파괴력이 큰 수류탄을 던지는 냉혹함을 보여 주었다.
(2) 피고인은 교통통제소 천막 뒤편으로 가서 소지하고 있던 지환통을 꺼내어 봉인지를 떼어내고 그 안에 있는 수류탄을 꺼낸 다음 다시 스티로폼을 집어넣고 봉인지를 붙인 후 빈 지환통을 원래 있던 전투조끼 왼쪽 주머니에 넣은 다음 안전핀과 안전클립을 제거하고 안전핀은 주머니에 다시 넣은 후 천막으로 다가가 피해자들이 모여 있던 천막 앞쪽으로 수류탄을 굴린 후 수류탄이 일병 공소외 38 앞에 떨어진 것을 확인하며 1∼2초 정도 지켜본 다음 바로 옆의 경사로 아래로 몸을 피하여 수류탄 폭발을 기다렸고, 수류탄 폭발 후 아비규환의 현장에서도 몸을 피했던 경사로에서 올라오며 신속한 사격을 위해 K-2소총에 결합되어 있던 숏탄창(5.56mm 보통탄 15발 및 공포탄 1발)을 소총에서 분리하고 공포탄 1발을 제거하여 이를 자신의 바지주머니에 넣은 다음 다시 위 숏탄창을 총기에 결합하고 실탄을 장전하여 곧바로 사격을 개시하였는바, 피고인은 소초원 모두를 살해하려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을 유지하며 범행을 실행하였다.
(3) 피고인은 수류탄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천막 주변에서 부상을 당한 채 소초 생활관 방향으로 도주하던 동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11발의 실탄을 발사하여 그 과정에서 부상하여 피신하던 하사 공소외 1이 실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이어서 ○○소초 생활관으로 내려가는 공소외 15, 공소외 40을 발견하고 뒤쫓아 가 보급로와 흙길이 갈라지는 지점 인근에서 실탄을 2발 발사하고, 이어 생활관으로 향하는 두 갈래의 길에 이르러 보급로와 흙길 중에서 어두워 안전하다고 판단한 흙길을 택하여 생활관 방향으로 5m 정도 전진 후 사용하던 탄창을 버리고 새 탄창을 총기에 결합한 다음, 흙길을 따라 수공구창고 앞에 이르러 수류탄 폭발로 다친 공소외 40의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 막사 취사장 앞 부근 대피호 방향에서 올라온 공소외 3, 공소외 2 등을 발견하여 실탄 5발을 발사하여 계단 맨 위에 있던 피해자 공소외 3의 우측견갑부를 맞춰 그 자리에서 사망케 하였고, 계단 상단에 있던 피해자 공소외 2의 우측견갑부를 맞춰 피해자 공소외 2는 피고인을 피해 생활관 중앙현관 까지 이동한 후 막사 중앙현관에서 사망하게 하였다. 피고인은 계속하여 위 계단을 내려와서 막사 뒤편을 거쳐 막사 흡연장 방향으로 이동한 다음 흡연장 옆 막사 출입문을 지나 전투화 건조대 옆에서 당시 수류탄 폭발 및 총성을 듣고 막사 안 복도에 서 있던 공소외 16, 공소외 4 등을 발견하여 불과 5-6m 거리에서 실탄을 발사하여 피해자 공소외 4의 우측견갑부를 맞춰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하였고, 피해자 공소외 16에게는 상해를 가하는데 그쳤는바, 피고인은 놀라서 도주하거나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비무장의 동료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총격을 가하여 무자비하고 냉혹한 살인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4) 그 후 피고인은 소총에 실탄이 걸렸다고 생각하여 막사를 빠져나와 다시 막사 뒤편으로 이동하여 위 K-2 소총에 결합되어 있던 롱탄창을 분리하여 점검하였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이 후 소초원들의 대응사격이 있을 경우 실탄이 부족할 것을 대비하여 아직 9발의 실탄이 남아 있던 탄창을 막사 뒤편 펜스 쪽으로 버리고 가지고 있던 다른 롱탄창을 결합하여 재차 사격할 준비를 마친 다음 당시 막사 상황실 창문을 통해 막사를 빠져나가려던 공소외 13을 발견하고 실탄을 발사하였으나 상해를 가하는데 그쳤고, 다시 생활관 정문 방향의 안전검사대로 이동한 피고인은 식당 쪽 대피호 인근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쪽 방향으로 실탄을 1발 발사하고 그를 피하기 위해 생활관 우측 출입문을 통해 복도로 진입한 후 2생활관에 숨어 있는 소초원을 발견하고 피고인 도주후에 생활관을 나와 대응 준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실탄을 발사하여 위협한 다음, 막사 취사장 앞 계단을 올라가 수공구창고를 거쳐 흙길 옆에 있는 물탱크 근처 오솔길을 따라 교통통제소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있던 공소외 5가 자신을 발견하고 “여기 피고인 병장 있습니다”라고 소리치자 공소외 5를 향하여 실탄을 발사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하였는바, 피고인은 눈에 보이는 동료들에게 무자비한 총격을 가하는 상황에서도 소초원들의 대응 등 위험요소를 예상하여 이를 제거하려는 노력까지 하는 침착함과 치밀함을 보였고, 소초원들의 대응이 예상되자 도주하다가 수류탄 파편에 부상을 당한 피해자 공소외 5가 자신을 발견하고 소리치자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즉시 그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냉혹하게 살해하였다.
5) 범행 후의 태도
피고인은 범행 후 목적지를 간성으로 정하여 동쪽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고, 피고인은 평소 훈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상황전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색하는 병력이 본인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 뻔해서 당당히 대처하면 걸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도주하던 중 약 6번 가량 수색대를 마주치면서도 제♤♤연대 초병이라고 둘러대고 오히려 무슨 훈련을 하느냐고 반문하는가 하면, 태연하게 경례를 붙이고 간부지시로 피아식별띠를 가지러 가는 것처럼 대답하며 상황을 모면하는 한편, 도주 중의 발자국 흔적 등을 보고 수색작전이 산중턱까지는 일반 부대들이, 중턱에는 수색대나 특공대가 포진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산 능선을 이동경로로 선택하고 자신의 발자국을 낙엽 등으로 지우는 등 태연하고 치밀한 도주행각을 벌였다.
피고인은 2014. 6. 23. 14:55경 강원 고성군 ◁◁콘도 주변에서 수색대와 대치하던 중 투항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범죄에 대한 후회와 반성보다 희생자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내용의 메모를 작성한 후 평생 감옥에 가기는 싫다며 자살을 시도하였는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자살을 함으로써 회피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다.
6) 피고인의 반성 여부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원심 및 당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의 주요한 부분에 대하여 자백을 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는 상당한 의심이 든다.
먼저, 피고인은 헌병 제9회 조사에 이르러서야 수사관의 질문에 ‘직접 본인이 당하지 않은 이상 어느 정도 공감은 하겠지만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겠죠. 유가족 분들에겐 당연히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무고한 희생자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저도 매우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되고 이런 결과가 생긴 원인에는 수없이 많은 무관심과 외면이 있었고 비록 이런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저는 10년 넘는 세월 동안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였으며 죽은 이는 항상 저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이런 사실이 있으며 지나간 세월과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받고 치유되지 못하기에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라고 진술하였고, 검찰 조사 시에는 ‘본인들이 한 행동을 모두 장난으로 치부한다면 저도 총을 쏘고 수류탄 던지는 행위를 남들이 장난이라고 안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저는 장난이라고 말할 정도예요’, ‘정작 괴롭히고 왕따시킨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저랑 제일 친했고 착하고 책임감 있는 남들과는 다른 용기 있는 그런 애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역시 사회는, 이 세계는 선한 자만 피해를 보는 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웠어요’, ‘일단 과거로 돌아간다면 사건을 안 일으키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약 사건을 일으켜야 할 운명이라면 제 총구는 오직 공소외 25 중사만 향했을 거예요’, ‘피해자 및 그 가족들도 많이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거예요. 말 그대로 피해자들이니까요... 제가 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비록 그게 사회와 국가의 원인이 있었다고는 하나 저도 제가 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저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했어요, 다친 피해자들에게도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나 군대 내에서 불합리하고 모순된 시스템 때문에 서로에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다치지 않은 소초원들은 이제 앞으로 자기 앞 길 갈 것 같다고 생각하고, 미안한 감정은 없어요. 죽이려고 하였지만, 제가 그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면 모를까 다치지 않았으니까... 딱히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아요’라고 진술하여(증거기록 1147쪽, 759쪽, 1478쪽, 1480쪽), 자신이 저지른 범행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성의 표현 하나 없이 마치 제3자가 저지른 범행의 희생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이렇게 되도록 만든 장본인들이나 이를 방치한 사회가 자신의 범행과 동일하게 비난받아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다음으로, 피고인은 체포된 이후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들 및 유족들에게 직접 어떠한 사죄의 표시도 한 바 없을 뿐만 아니라 합의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항소심 제3회 기일에 이르기까지 반성문 한 장 제출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서 제출하지 않은 것이라는 취지의 변명을 하였고, 제4회 기일에 이르러 제출한 사죄문 및 반성문에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다시 이 사회와 군대의 구조적 불합리와 모순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들에게 단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이 사회와 군대가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태도를 보였고, 나아가 자신이 이러한 불합리와 모순으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구원자가 되기로 하였다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까지 보였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유족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내재적 피해의식에서 오는 비뚤어진 분노의 감정으로 인해 현재도 묵묵히 국토방위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장병들뿐만 아니라 희생당한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오히려 모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7) 재범의 우려
피고인은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중학교 3학년 때 한 친구로부터 심한 육체적·정신적 괴롭힘을 당하여 그 고통이 극심하였음에도 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고 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또 다시 같은 반 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자 중학교 때부터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였다는 생각에 격분하여 그 친구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고 집으로 가서 날카로운 과도를 가지고 학교로 가다가 이를 안 피고인의 부친이 제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었고, 이 사건 범행 역시 자신을 희화하는 그림을 보고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괴롭힘과 군 입대 후의 괴롭힘이 한꺼번에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저지르게 된 것인바, 피고인은 어린 시절 당한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항상 분노로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피고인에 대한 치료감호소장 작성의 정신감정 결과통보에 따르면, 피고인은 친밀한 대인관계를 회피하고 가까운 친구가 거의 없고 사회적 지지자원이 결여되어 있으며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불편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과거 외상적 사건에 대한 계속적인 불편과 불안을 느끼고 있고, 우울을 신체적인 형태로 경험하고 표현하는 경향이 엿보였고, 자신에 피해를 주는 대상이나 상황을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남의 탓으로 생각하여 분노감, 적개심으로 발전되는 형태를 보이며 이는 전체적으로 특정불능의 인격장애에 해당하며, 이러한 인격성향에 대한 치료기법은 특이한 것이 없고, 약물치료, 정신치료 등 정신과적 전문치료 등으로 큰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이러한 인격성향으로 인한 내재적 분노감과 적대감은 피고인이 다시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하더라도 또 다시 범죄도 서슴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여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 할 수 없다.
 
다.  피고인에 대한 양형 판단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북한군과 지근거리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소초에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헌신하고 있는 무고한 동료 병사들과 자신의 상관들을 향해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격을 가하여 5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고, 7명의 신체에 상해를 가한 후 총기와 실탄을 소지한 채 도주한 사안으로, 국가안보에 중대한 공백을 초래하였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군의 사기를 극도로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들 그리고 더 나아가 서로에게 자신의 생명을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던 동료 장병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충격과 고통 그리고 커다란 슬픔을 안겨 주었다.
피고인은 스스로 집단적인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없었고 단지 일부 소초원들로부터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였지만 살인의 범행을 저지를 정도로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다고 하거나, 이미 초소 근무 때 순찰일지 뒷면에 그려진 자신을 희화한 그림의 존재와 늘어가는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사건 당일 그 그림을 보고 과거 중·고등학교 시절 및 군 입대 후의 괴롭힘을 당한 것이 한꺼번에 떠올라 소초원 모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라고 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고 있을 뿐이어서 이 사건 범행에 있어 피고인에게 정상에 참작할 만한 뚜렷한 동기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초원 전원을 살해하려는 극악한 결심을 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특정인에 대한 원한이나 복수심이 없었음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해악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친하게 지내기까지 하였던 동료들을 포함한 소초원 전부를 목표로 삼고, 일부 소초원들이 별명을 부르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정도의 괴롭히는 행위를 살인 행위와 동일시하며 비난하는 등 극도의 인명경시의 태도를 보였다.
피고인은 범행을 결심한 후 소초원들의 대응 가능성, 대응 방식 및 시간 등을 고려하여 공격방법, 대상 및 우선순위를 정한 후 범행 실행의 경과를 예측하여 행동하는 치밀함을 보였고, 범행을 실행해 나감에 있어 주저함 없는 결단성과 대담함 그리고 냉철함을 보여주었으며, 근무를 마치고 모여 무방비 상태로 잠시 휴식 중이던 동료들을 향해 살상력이 큰 수류탄을 망설임 없이 던졌고, 수류탄 폭발로 부상을 당한 동료들이 도망하자 이들을 추격하여 살상하였으며 또한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하던 동료들에게 불과 5-6m 거리에서 총격을 가하여 살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동료에게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자 그를 향해 즉시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모습에서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냉혹함과 태연함이 몸서리 처질 정도여서 피고인에게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교화·개선될 여지가 과연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피해자들 및 그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사죄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가 당심에 이르러서야 사죄 및 반성의 글을 제출하여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였으나, 여전히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사회 및 군대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하면서 마치 제3자의 관점에서 불운하게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 및 유족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고, 피고인의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 유가족들은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의 말 한마디 없는 피고인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여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피고인의 범행은 형법상 살인죄 및 군형법상 상관살해죄가 예상하고 있는 가장 중한 유형에 속하고 우리 법은 가장 중한 유형의 살인죄에 대하여는 그 법정형을 사형으로 정하고 있다. 비록 피고인이 아직 나이가 어리고 처벌전력은 없으나,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피고인에게 개선·교화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던 전우에게 그 목숨을 빼앗기고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배신감, 사회 구성원 전체가 받은 충격, 저지른 죄와 형벌의 균형, 유사한 유형의 범죄 발생을 막기 위한 일반예방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원심의 선고형량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으므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군사법원법 제430조 제1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군판사 대령 황민제(재판장) 소령 류희삼 중령 안지영